[인도] 3. 요가의 중심에서

[인도] 3. 요가의 중심에서

새벽 6시.

델리를 출발해서 밤새 달린 기차가 하리드왈 역에 도착했을 땐 아직 사방은 어두웠다. 이 날의 목적지는 리시케시라서 다시 버스를 타야했다.

역을 나오고 바로 버스 터미널이 있어서 리시케시 행 버스가 어느건지 물어보고 다녔는데 아무도 확실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인도의 특징 중 하나 일 수도 있는데 모르면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괜히 아는 척 하면서 잘못 된 정보를 알려준다. 그렇게 여기가라 저기가라 라는 소리를 들으며 돌아다니다가 그냥 버스 터미널 출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이른 아침이라 쌀쌀해서 드럼통에 불을 붙인 곳에 사람들이 모여서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도 짜이 한잔을 사 들고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리시케시에 간다는 아저씨가 있어서 버스 여기서 타는 거 맞냐고 물어봤는데 자기도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럴 거 같아서 일단 여기서 기다린다고 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시스템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렇게 한시간여쯤을 기다렸을 무렵. 버스 한대가 나오는데, 리시케시 간다는 아저씨가 왠지 저 버스 일 거 같다면서 뛰어가서 운전 기사랑 무슨 얘기를 하더니 이 버스라고 빨리 오라고 나한테 알려줬다. 그래서 나도 버스에 다가가서 올라타려는 순간 사람들이 어디에 숨어있었던건지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갑자기 버스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가 감이 좋아서 다행히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타서 앉아서 갈 수 있었다.


스티브 잡스와 비틀즈도 그 옛날 영감을 얻기 위해 방문한 적이 있다는 리시케시에 온 이유는 요가 수련원을 체험하기 위함이다. 인도에 요가로 유명한 곳은 몇군데 있지만, 리시케시가 그 중심이라고 들었다. 그 명성답게 요가 수련원들이 많은데, 수련원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어떤 곳은 규율이 심해서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대화도 하면 안되고 자유시간도 없이 오롯이 수행에만 집중해야 하는 곳이 있는 반면, 내가 간 곳은 요가 하루 두번하고 그 외는 자유롭게 지내도 되는 곳이었다. 요가 시간마저 귀찮으면 참가 안해도 될 정도로 규율이 거의 없었던 곳.

사실 가기 전까지는 그렇게 규율과 스타일이 다른 수련원들이 있다는 건 몰랐다. 난 단지 도착했을 쯤에 급똥 신호가 와서 그냥 가까이에 보이는 곳에 가서 등록했다. 매일 요가 수업 2번, 삼시세끼 다 제공, 숙박까지 해서 800 루피 였으니 나쁘지 않았다. 규율이 심한 곳이 있다는 건, 다른 수련원에서 피난(?) 온 다른 외국인에게 들어서 알게 되었다.

사실 난 요가 강사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체험만 해 보고 싶어서 온거라서, 그런 의미로는 나에겐 적합한 수련원이었다. 하지만 더 진지하게 제대로 배우고 싶은 경우는 다른 수련원을 가는게 나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계속 나갔다 들어왔다 하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하는 커리큘럼은 아니었다.

이곳에서 가장 좋았던 건, 이 날 이후 약 2개월 동안 같이 동행하게 될 네덜란드인 J군을 만난 것이었다. 여행을 하는 2년이란 시간 동안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행이다. 여행 스타일도 잘 맞았고, 음식도 가리는 거 없이 잘 먹어서 솔로플레이와는 다른 팀플레이의 즐거움을 알게 해 준 사람이다.


요가는 매일 새벽 5시에 개인 명상을 할 수 있도록 요가장(?)을 개장하고 6시부터 요가 수업이 시작 됐다. 처음 요가장에 갔을 때 휴지가 방 여러 곳에 놓여 있는 걸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는데, 수업이 시작되자 그 이유를 바로 알게 되었다. 무슨 태양과 달의 에너지를 받아야한다며 한쪽 콧구멍을 막고 다른 쪽 콧구멍으로 숨을 강하게 들이쉬고 내쉬고 하는게 가장 처음 한 거 였다. 새벽이라 쌀쌀하기도 해서 안그래도 콧물이 좀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호흡하면 콧물이 안나올 수가 없다.. 수업 시작하자마자 곳곳에서 코를 푸는 우렁 찬 소리가 요가장 안을 가득 채우는게 너무 웃겼다.

요가 수업은 한시간 45분 정도. 끝나고 나면 파이어 푸자라고 캠프 파이어 처럼 불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아서 만트라를 외우는 의식 같은 세션이 있었다. 뭘 하는지 설명도 딱히 없는데 참여한 사람들은 다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만트라를 선생님을 따라서 외우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상한 종교의식을 치루는 느낌도 받아서 이후엔 참가하지 않았다.

푸자 세션이 끝난 후엔 조식. 먹기 전엔 항상 만트라를 외워야하는데 난 잘 몰라서 립싱크 하다가 마지막에 "옴~" 부분만 항상 같이 했다. 인도에 있으면 채식주의자가 아니어도 강제로 채식주의자가 될 수 있는데, 요가 수련원에서도 철저히 삼시세끼 고기가 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냥 과일, 말린 과일, 콩, 사모사, 달밧, 라이스 푸딩, 짜파티, 브리야니, 브로콜리 볶음 같은 것들이 나왔다. 원래 개인적으로 현지 음식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고 오히려 잘 먹는 편이라 음식 자체는 불만이 없었다. 리필에 제한이 없고 다들 기본적으로 소식해서 남는 양이 꽤 있는 편이었는데, 먹성이 좋은 J군과 나는 리필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두끼 정도 둘이서 그렇게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배식해주시는 분이 조금은 한심한 듯 쳐다보며 (기분 탓일 수도 있다) 처음부터 엄청나게 많이 퍼 주셨다.


일요일은 카르마 요가를 하는 날이라고 해서 뭐 또 특별한 걸 하는 줄 알았는데, 따로 요가 수업이 없고 그냥 하루 동안 아무거나 착한 일 하나 이상 하면 된다고 했다. 수업이 없으니 이 날 하루는 J군과 함께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밥을 놓칠 순 없으니 일단 조식 먹고 근처에 있는 폭포를 보고 점심 시간에 맞춰서 돌아와 점심을 먹고 바바의 동굴을 보러갔다.

바바의 동굴은 바바 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살고 있는 동굴이다. 바바는 힌디어로 여러 뜻이 있다고 하는데 이 경우에는 현자의 뜻으로 사용되는 거 같다. 이 동굴은 수련원 근처 산 속에 있는데 가서 바바와 얘기도 하고 명상도 같이 할 수 있다. 산 속에 살고 있는 도인/자연인 같은 느낌. 바바는 영어를 못해서 대화다운 대화는 못했지만 간단하게 손짓 발짓으로 간단하게 대화를 나누고 그의 거처를 구경했다.

바바와 헤어지고 산 속에 있는 사원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 다시 바바의 동굴 근처를 지나가는데 바바는 시선을 강탈 할 핑크색 삼각펜티 하나만 입고 도수체조 같은 걸 혼자서 하고 있었다. 방해하면 안될 거 같아서 조용히 지나가려고 했는데 눈이 마주쳐서 인사했더니 반갑게 인사는 받아줬다. 서로 말은 안통하지만 나름 재밌는 사람이었다.


리시케시, 그 안에서도 요가 수련원들이 모여있는 락삼쥴라는 크게 뭘 할 것도 없고 볼거리도 많지 않아서 자유시간이 주어져도 크게 할 일은 없었다. 하지만 덕분에 자유시간에 오랜만에 여유롭게 독서도 해보고 낮잠도 자보고 할 수 있는 건 좋았다. 인도는 하루 종일 시끄럽고 번잡한 곳도 많은데, 이 곳은 다른 곳들에 비교하면 조용하고 거리도 깨끗한 편에 속하기에, 긴장을 쉽게 풀 수 없었던 인도에서 그나마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었다. 번잡한 인도에 지쳐 갈 때 쯤 몸과 마음을 재충전 하는 의미로 며칠 들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내가 지낸 수련원 방. 방도 화장실도 깔끔해서 아무 불만 없이 잘 지냈다. 심지어 발코니도 있었다. 매일 새벽 강풍이 불기 때문에 빨래는 밤에 널지 말자. 첫날 밤 모르고 널었다가 다음 날 날아간 빨래를 수습하느라 J군과 둘이 고생을 했다.



밥은 이런 식으로 나왔다. 비쥬얼은 별로지만 맛은 나쁘지 않았다. 녹인 버터를 뿌려 먹을 수 있는데 그렇게 먹으면 더 맛있다.

수련원 안에 있는 도서관. 세계 각지의 여행자들이 책을 두고 가서 제법 재밌는 책들도 많았다. 자유시간에는 주로 여기에 있는 책을 들고 나와서 밖에서 읽곤 했다.

리시케시는 겐지스강의 상류가 있다. 바라나시랑은 비교도 안되게 깨끗하다. 이 정도로 물가가 깨끗한 곳은 인도에서 보기 드물었다.

강이지만 해변 같은 느낌도 준다.

멍멍이도 안심하고 낮잠 잘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고 깨끗한 강가. 이게 뭐 별건가 싶지만 개인적으론 인도에서 만큼은 특별하게 느껴도 된다고 생각한다.

이 다리를 기준으로 락삼쥴라와 람쥴라가 나뉘었던 거 같다. 어딜가나 요가 수련원은 많다.

바바의 동굴. 안은 사진 촬영 NG

밖도 나름 빛이 들어오도록 구멍을 뚫어 놓았다.

파이어 푸자를 하는 곳. 아침 요가 후의 정식 세션이 아니어도 개인적으로도 이용 가능 한 거 같았다. 정식 세션 때는 사람들이 불을 중심으로 둥글게 앉아서 30분 정도 만트라를 외운다.

요가장 입구. 들어갈 때 메트랑 담요랑 챙겨서 들어가면 된다. 새벽엔 쌀쌀해서 담요가 있으면 좋다.

요가장 내부. 벽에 휴지가 걸려있다. 실제로 요가를 할 땐 모든 사람이 휴지를 가지러 갈 수 없으니 손을 들면 선생님이 휴지를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