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배낭여행자들이 네팔과 인도를 세트로 여행한다. 나도 그 중 하나. 네팔에서 인도, 혹은 인도에서 네팔로 이동할 수 있는 국경은 몇군데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소나울리 국경을 이용하지 않을까 싶다. 이 국경은 주로 네팔의 카트만두 ~ 인도의 바라나시 구간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이 이용한다.

그러한 이유로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는 여행자의 경우, 인도의 첫번째 목적지가 바라나시인 경우가 많다. 나 역시 그런 여행자들 중 하나였다.

인도로 넘어가기 전날, 난 룸비니에서 묶고 있던 한국절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줄 서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그는 카트만두에서 몇번 마주친 스페인 아저씨 S. 이 아저씨는 영어를 잘 못했는데, 이곳에서 나와 만나고 2주 정도 동행을 하는 동안 영어 실력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능력자다.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역 발렌시아 출신. 축구선수 이강인의 소속팀의 연고지로 한국에 잘 알려진 곳. 하지만 집은 이비자에 있는 아저씨다.

마침 그도 내일 바라나시로 간다고 하여 나와 스케쥴이 일치 했기 때문에 같이 가기로 했다. 다음 날, 국경까지 히치하이킹을 마치고 출국 도장을 찍으러 갔는데, 아저씨는 네팔에서 봉사활동을 하느라 비자 기간이 3일 지난 상태여서 벌금을 물어야했다. 벌금은 40달러. 참 웃기는게 네팔임에도 불구하고 네팔 루피로는 벌금을 지불 할 수가 없다. 달러로 밖에 안받는다며 직원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달러가 없던 아저씨는 국경 근처 환전소에 갔는데 달러를 네팔루피로 환전은 해주면서, 네팔루피를 달러로 환전해주지는 않았다. 이러한 케이스는 사실 외화 보유고가 적고 자국 통화의 가치가 불안정한 개발 도상국에서는 흔히 발생하는 경우다.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지고 있던 달러로 벌금을 대신 내고, 아저씨는 대신 나에게 유로를 줬다. 모든 절차를 끝마치고 국경을 넘는데, 여기 국경은 아무도 지키고 있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냥 왔다갔다 왕복하고 있고, 인도 쪽에 넘어간 후에도 입국 도장은 알아서 사무실을 찾아가서 찍어야한다. 안찍으면 나중에 출국할 때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반드시 찍어야한다.

그렇게 셀프로 가서 입국 심사를 받고 도장을 받은 후, 우린 로컬 버스를 타고 기차역이 있는 고락푸르라는 도시로 향했다. 창문이 없는 낡은 버스를 타고 약 4시간. 내릴 때 쯤엔 우리의 배낭은 먼지로 뒤덮혀있었다.

인도의 기차는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당일 날에 표를 구하기가 힘든 경우가 많은데, 우린 외국인 전용 창구의 직원이 웨이트 리스트에 잘 올려준 덕에 무사히 바라나시 행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열차가 떠나는 시간까지 역 주변을 돌아보고 저녁을 먹고 기차를 타러 갔는데, 플랫폼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카트만두 그리고 포카라에서 만났던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 대략 10명. 그들 역시 우리처럼 네팔에서 넘어와서는 바라나시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역에 늦게 도착한 탓에 기차표를 구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고락푸르에서 하루 묶고 싶지는 않았기에, 정원이 정해져있지 않은 제네럴 클라스의 객차를 탄다고 했다.

(인도 기차의 객차 등급이 궁금하다면 -> https://www.yeolog.net/log/5b2ba0bf98d54a4421a7667d/인도의-기차-시스템)

제네럴 클라스의 객차는 카오스라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면 외국인들은 잘 타지 않는다. 티비나 인터넷에 보면 객차 안이 미어터질 정도로 꽉차서 사람들이 메달려서 가는 인도 기차의 사진이나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제네럴 클라스 객차다. 나와 S는 그들에게 행운을 빌며 우리의 자리가 있는 3A 객차로 향했다.

나름 편하게 5~6시간을 누워서 바라나시에 도착한 후, 우리는 제네럴 클래스에 탔던 다른 여행자들을 찾아갔는데, 모두가 죽을 거 같은 몰골을 하고 있었다. 미동조차 하지 못할 정도로 미어터지는 객차 안에서 5~6시간을 현지인들 사이에 끼어서 왔고, 추행과 소매치기 시도도 있었다고 한다. 객차 안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건 옵션.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지옥 같은 경험이라고 했다.

그렇게 다시 재회한 그들과 팀을 나누어 우린 뚝뚝을 같이 타고 겐지스강의 가트로 향했다. 새벽 6시쯤에 도착한 겐지스강 강변. 일출 시간의 겐지스강은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사실 난 네팔에서 인도로 가는 걸 조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 온 여행자들 중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면 지옥을 경험하게 될거야"

하지만 그 와중에도 바라나시는 좋았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에, 난 내심 바라나시가 나의 첫 인도 도시인 것에 대해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바라나시에 도착하고 S와 함께 숙소를 구한 후 한숨 자고 밖을 처음 돌아본 날. 바라나시가 왜 좋은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인도가 왜 지옥이라 표현되었는지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좁고 더러운 골목길들. 외국인들만 보면 다가와서 어떻게든 돈을 뜯어보려 시도하는 현지인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바로 사기치는 상인들. 소, 사람, 차, 릭샤, 오토바이 그 아무것도 서로 양보하지 않아 길이 막히고, 1초에 경적소리가 300번은 울리는 시끄럽고 먼지 날리는 길거리. 이 모든 것들을 처음 겪었을 땐 말 그대로 왜 지옥이라 표현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 중에도 돈을 뜯으려는 현지인들이 끊임 없이 따라다니며 귀찮게 구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이 정도로 현지사람들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된 나라는 인도가 유일하다. 머리 깎아준다, 수염 깎아준다, 화장터 구경시켜준다 등 부터 시작해서 하이클라스 대마초를 판다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하루는 겐지스강 강변을 걷고 있는데, 근처에 있던 외국인에게 어떤 현지인이 다가오더니 갑자기 외국인의 이마에 붉은 점을 묻혔다. 인도 사람들을 보면 이마에 빨간 점을 찍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를 '빈디'라고 부른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외국인이 벙쪄있는데, 외국인의 이마에 빈디를 찍은 인도인이 말했다.

"빈디 찍어줬으니까 비용 100루피 내놔!"

어이가 없었다. 자기가 와서 멋대로 찍은 것도 모자라서, 찍어줬으니까 막무가내로 돈을 내놓으란다. 그 외국인도 인도에 온지 얼마 안된건지 어버버 하다가 결국 돈을 주고야 말았다. 제 3자의 입장에서는 냉정하게 돈을 왜 주냐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순진한 초보 여행자들은 생각보다 이런 수법에 걸리는 경우가 많다.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상황에 당황해서 사고가 정지해버리기 때문인 것 같다.

이렇듯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고, 말을 걸어오는 현지인들이 또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청구(?)하며 귀찮게 할 지 모르기 때문에, 나중엔 영어를 못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은 절대로 물러서지 않았다. 바라나시 강변에 있는 이러한 현지인들은 다양한 외국어에 능통했다.

난 이 일에 대해서 바라나시에 있는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과 얘기를 나누어봤는데, 그 결과 한국어는 물론이고 일본어, 중국어, 불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등등에 능통한 현지 인도인들이 겐지스강변에 어슬렁 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유일하게 그들을 무찌를(?) 수 있었던 언어는 나와 동행하던 S가 할 줄 알던 카탈루냐들의 언어 카탈란어와 폴란드어였다.

이렇게 처음엔 정말 하루 하루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나를 짜증나게 만들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니 그것도 적응이 되었는지 점차 바라나시라는 곳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좁고 더럽고 미로 같던 골목은 매일같이 다니다보니 점점 길을 외우게 되었고, 같은 길을 지나더라도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상점, 식당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잘 찾아보면 인도 음식만이 아닌 다양한 음식 또한 맛 볼 수 있는 곳이 바라나시의 골목길이었다.

라씨를 먹으며 좁은 골목길을 통해 매일 수도 없이 "람 람 라챠해"를 외치며 겐지스강으로 시체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골목길 한복판에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는 소도, 지붕 위에서 호시 탐탐 먹거리를 노리고 있는 원숭이들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끊임 없이 시체가 화장되는 겐지스 강변의 화장터도, 처음엔 당황스러웠던 이 많은 풍경들이 점차 정겹게 느껴져 갔다.

어차피 바라나시가 그렇게 크게 할 일이 많은 곳도 아니라 매일 골목길을 돌아다니던가 겐지스 강변을 돌아다니던가 하는게 일과인데, 매일 같은 일을 하다보니 자주 마주치는 여행자들, 그리고 현지인들이 생기고, 다들 할 일이 없으니 마주치면 그냥 근처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게 일상이었다. 처음엔 귀찮게만 느껴졌던 겐지스 강변의 사기꾼들도 나중엔 마주치면 인사와 잡담을 하는 관계가 되기도 했다. 네팔에서 스쳐지나갔던 많은 여행자들과 우연처럼 길거리에서 다시 만나는 것도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게 되었다.

이게 바로 바라나시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크게 뭔가 할 것도 없고 볼 것도 없지만,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는 그런 매력이 있는 곳. 여유롭게 자기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거나 누군가와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곳이 바라나시가 아닌가 싶다.

난 원래 한 도시에 그렇게 오래 머무는 편이 아닌데, 동행하던 S 아저씨가 설사병에 걸린 것도 있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까웠기 때문에 바라나시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는가 궁금했던 것도 있어서 1주일 넘게 체류하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인도'라는 나라에 대한 적응기를 가질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너무나도 좋은 만남들이 있었던 곳이기도 하다.

아무리 여행경력이 많은 사람이라도, 인도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무조건 적응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도에서 2달 가까이 여행을 했던 나도, 지금 다시 가면 처음 며칠은 다시 적응하는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 많은 여행자들이 이 적응기를 버티지 못하고 도망가듯이 인도를 떠나가는데, 그런 분들에게는 바라나시에서 1주일만 버텨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물가도 저렴하고, 먹거리도 다양하고, 맥도날드나 도미노 피자처럼 익숙한 프랜차이즈도 있고, 시설 좋고 저렴한 영화관도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여행자들과 쉽게 교류할 수 있고, 친구 만들기도 쉽고, 향후 일정을 함께 할 동행을 구하기도 쉽다. 별거 아닌거 같지만, 인도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겐지스강 주변에는 이러한 묘한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기억은 없고 즐거웠던 추억만이 가득해진 그런 도시다.


바라나시 역에 도착했을 때 플랫폼. 사람들로 넘쳐났다.

혼자서 어떻게 올라간건지 알 수 없는 양

겐지스강에 띄울 대형 보트를 만드는 사람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설치한건지 알 수 없는 남성용 소변기. 심지어 꾀나 높게 설치되어 있었다.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시원라씨의 주인 아저씨. 친절하고 항상 양도 넉넉하게 많이 주셨다. 인도 전역에서 먹어 본 라씨중에 개인적으로는 여기 라씨가 최고였다. 화장터로 이어지는 골목길에 있어서 그런지 이곳에서 라씨를 먹고 있으면 화장터로 시체를 운반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화장터 뒷편. 화장에 쓰이는 땔감들이 쌓여있다. 이 근처를 지나다니다 보면 화장터 구경시켜주고 각각의 의식이 무슨 뜻인지 공짜로 설명해준다는 사람들이 끝도 없이 말을 걸어온다. 인도에서는 겐지스강에서 화장 당하는 것이 가장 명예로운 일이라고 하는데, 화장에 쓰이는 땔감이 아주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설명이 다 끝나면 마지막에 땔감 살 돈 기부해달라고 한다.

강변을 걷다보면 에펠탑이 나타난다.

저녁 때가 되면 시바신을 찬양하는 퍼포먼스인 푸자를 볼 수 있다.

하루는 심카드를 사려고 큰길로 나갔는데 공중화장실이 이런식으로 길 한복판에 설치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길에서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큰 길가는 항상 카오스였다.

보트타고 겐지스강 유람. 일출 때랑 일몰 때 한번씩 타봤는데 좋았다.

강 위에서 바라 본 화장터의 모습.

화장터는 몇군데에 있는데 잘 보면 근처에 온통 쓰레기 천지다.

쓰레기 쌓인 강변 옆에서 빨래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보트 투어는 강변 보트 근처에 있는 뱃사공들이랑 잘 흥정해서 하면 된다.

크리스마스 쯤에는 슈퍼문이 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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