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1. 인도라는 나라

[인도] 1. 인도라는 나라

인도에 가기 전, 인도에 가본 적이 있다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들이 있었다.

"나라 진짜 개판이야."

네팔에 있던 나는 네팔도 충분히 개판으로 보였는데 바로 밑나라 인도는 도대체 어느정도 수준이길래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렇게 얘기하는지 궁금했다.

"인도에 비교하면 네팔은 천국이지."

국적에 상관 없이 많은 여행자들이 이렇게 말을 했다. 어떤 사람은 인도라는 말만 들어도 치를 떨며 두번 다시 그 딴 나라 가고 싶지 않다고 까지 했다. 하지만 또 어떤 사람은 너무 재미있고 좋았다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인도라는 나라는 "그냥 괜찮았어~" 정도의 중립적인 반응은 없었다. 정말 좋았거나 정말 싫었거나의 극단적인 호불호가 갈리는 그런 나라다. 하지만 호인 사람도 불호인 사람도 나라가 개판이라는 점에서는 누구나 어느정도 동의를 하는 거 같다.

다행히도 난 어느정도 잘 맞고 재미있어서 인도에서 2달 가까이 지내게 되었지만, 힘든 일도 많았고 나라가 개판이라는 점에서는 역시 동의 한다. 인도는 동행이 있는 것이 여러가지 면에서 나은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를 버티지 못하고 1주일 이내로 떠난 사람들 중엔 동행이 없었던 사람들의 비율이 높았던 거 같다.

인도 여행이 힘든 이유는 크게 3가지가 있다.

  1. 더럽다
  2. 시끄럽다
  3. 삐끼/사기꾼들 천지

우선은 더러움. 물론 뉴델리, 뭄바이, 방갈로르 같은 대도시는 구역에 따라 깔끔하고 현대적인 곳도 있으나, 인도의 대부분의 지역은 정말 더럽다. 특히나 강가와 같이 물이 있는 곳이 더럽다. 일단 나라 자체에 쓰레기를 모으고 처리해야 한다는 개념과 문화 자체가 없는 듯 하다. 아무대나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기본이고 강가에 가면 쓰레기가 쌓여있다. 쌓여있으니 사람들이 또 거기에 계속 버린다. 아무도 처리를 안한다. 그런 더러운 강에서 빨래하고 목욕하고 시체 화장까지 하니 병에 걸리지 않는게 더 신기할 뿐.

간혹 바라나시의 겐지스강에서 현지인들 따라한다고 강에 들어가는 여행자들이 있다. 이건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내가 아는 것만 해도 3명이 실제로 현지인들 처럼 강물에 들어갔다 나온 후 병원에 실려갔다. 한국에서는 절대로 걸릴 일이 없는 이상한 병에 걸려서 거의 한달 동안 병원에 입원한 케이스도 있다.

쓰레기통은 보기 드물지만 아예 안보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쓰레기통이 있어도 별 의미가 없다. 한번은 역에 쓰레기통이 있어서 거기에 쓰레기를 버렸는데, 누군가가 와서 쓰레기통을 들고 가더니 그냥 선로에 쓰레기를 버리고 통을 비운 후 다시 쓰레기통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기차든 버스든 타면 그냥 창밖으로 뭐든지 버리는건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가리지 않는다. 인프라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인구가 많은 나라라 사람들을 교육하고 가치관을 재정비 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 같다.

이러한 위생 문제 때문일까. 인도에 와서 설사병에 걸려 심하게 고생하는 여행자들을 많이 보았다. 인도의 설사는 정말 지독한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계속 신호(?)가 온다. 근데 얼마나 지독한지, 사람에 따라서는 신호가 오자마자 참지 못하고 바로 배변(...)을 하기도 한다.

내가 초반에 같이 동행했던 유럽인 친구도 언젠가 한번 설사에 걸렸는데 너무 힘들다며 하루종일 방에서 쉰다고 했다. 그래서 나 혼자 밖을 돌아보고 구경하고 방에 돌아왔는데 그는 화장실에서 바지를 빨고 있었다. 설사 걸려서 곧 죽을 거 같던 사람이 빨래를 하고 있으니 궁금해서 물어봤다.

"뭐야 왜 갑자기 빨래 하고 있어?"

그러자 3초의 정적 후 그는 대답했다.

"바지에 지렸어..."

침대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신호가 왔는데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에 갈 틈도 없이 바로 나와버렸다고 한다. 물론 이 일이 일어나기 이전에 이미 화장실을 수백번 들락날락해서 체력이 빠진 이유도 있겠지만, 다 큰 성인이 화장실을 바로 옆에 두고 바지에 지려버릴 정도로 무서운게 인도 설사병이다. 자연치유를 하려면 대략 1주일정도 설사와의 전쟁을 해야하지만, 인도 약국에서 파는 인도 설사약을 먹으면 비교적 금방 낫는다고 한다. 단, 무조건 인도 설사약이어야 한다. 다른 나라에서 가져 온 설사약으로는 인도의 설사병을 이길 수 없다.

인도여행이 힘든 이유 두번째인 시끄러움. 사람도 많지만 차도 많다. 오토바이, 릭샤, 버스, 자동차 등등.. 근데 일단 제대로 된 신호등 시스템이 없는 경우가 많고 다들 알아서 조심해서 피해가야한다. 운전 면허라는 제도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거기에 사람들 성질은 다들 얼마나 급한지 서로 양보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 때문인지 거리를 걷다보면 1초에 경적소리가 60번은 들린다. 너무 시끄러워서 밖에 나가 조금 걷기만 해도 피곤해지는 날이 많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더러움과 시끄러움보다 더 힘들었던건 사람이었다. 길을 걷다보면 정말 시도 때도 없이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고 사기를 치려고 한다. 99% 경우가 어떠한 식으로든 돈을 뜯어내보려고 수작부리는 사람들이다. 정말 별의 별 수법을 다 경험해볼 수 있다. 가장 짜증나는건 눈치가 없고 포기를 모른다는 것. 다른 나라 같았으면 무시하거나 정중히 거절하면 그냥 가는데 인도 사람들은 정말 끈질기게 따라온다. 10분, 20분은 우습게 따라다닌다. 이런걸 계속 겪다 보면 사람이 공격적이고 전투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기 수법(?)은 바라나시에서의 일이었다. 겐지스강을 따라 가트에서 걷고 있는데 한 남성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인도에 온 걸 환영합니다~ 환영의 의미로 악수나 한번 합시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손을 내밀기에 나도 손을 내밀어 우린 악수를 했다. 난 평범하게 2초 정도만 악수를 하고 손을 빼려고 했는데 그는 30초 가량 내 손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내가 나 갈거니까 이제 손 좀 놓으라고 말을 하자 그제서야 내 손을 놓으며 그는 말했다.

"자~ 손 마사지 해줬으니까 돈줘. 30루피."

악수하자면서 내 손을 왜이리 쪼물딱 대나 싶었더니 마사지였나 보다. 참으로 참신한 또라이라 생각했다. 난 웃는 모습으로 대답했다.

"응 그래 고마워 꺼져 ^^"

그러자 그도 웃으며 그냥 가던 길을 갔다. 사실 이런 부류는 믿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아무말 대잔치를 하며 찔러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이쪽도 그냥 개그로 받아주고 넘어가면 잘 끝난다. 자기들도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이런 식으로 지나가는 외국인들을 찔러보는건 실제로 당황하여 어쩔줄 몰라하다가 결국 돈을 주는 외국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날 나는 산책하다가 나와 똑같은 일을 겪는 서양인을 목격했는데, 얼굴이 빨게지면서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엔 돈을 건내주었다.

처음엔 나도 웃으면서 대화해주고 귀찮게 따라다녀도 적당히 장단에 맞춰주었다. 그런데 한 30번 정도 이런 사람들을 겪고 난 후엔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고 내 기분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법도 달라졌다.

기분이 나름 괜찮고 심심할 땐 장단에 맞춰주면서 웃으며 대화를 해줄 때도 있지만 기분이 정말 별로 일 땐 바로 소리를 지르게 되었다.

"꺼져 이자식아! 돈 없어!!!!!!!!!!!!!"

정말 이렇게 말 안하면 계속 따라오면서 귀찮게 한다. 단순히 무시도 해봤지만 그러면 계속 따라온다. 그냥 지친 여행자들이 이 돈 먹고 떨어지라고 돈을 주길 바라는 것 처럼.

길 가다 말 거는 사람이 아니어도, 어딜 가서 무언가를 살 때도 항상 조심해야한다. 외국인은 뭘 하든 무조건 협상을 해야한다. 기본적으로 처음 말하는 가격은 무조건 바가지다. 이쪽이 조금이라도 틈을 보이면 바로 눈 뜨고 코 베인다. 이렇게 매일 같이 모든걸 협상하며 다녀야하기 때문에 정말 피곤했다. 이런 걸 잘 못하는 사람은 인도에 가면 안된다.

사실 사기를 당한다고 해도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게 큰 금액이 아니다. 사기치는 사람들도 가격을 후려치는 사람들도 어차피 외국인들한테는 큰 돈 아니니깐 이래도 된다 라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귀찮으니까 그냥 달라는대로 주는 사람들도 있다. 나도 가끔은 피곤하니까 그냥 달라는대로 주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시작하면 이게 잘못된 거라는 걸 그들이 영원히 인식하지 못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추후에 다른 여행자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단적으로 예를 들면 한국인은 호구니까 더 후려치자며 국적에 따라 후려치는 가격이 달라질 때도 있다. 한국인이 호구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라도 난 전투적으로 변해야했다.

아, 그리고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길을 물어보면 안된다. 아니 왠만하면 다른 여행자들이 알려주는 정보를 믿어야지 현지인들의 정보는 잘못된 경우가 많다. 단순히 길을 알려주는 것도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해주면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는데, 인도에서는 몰라도 모른다고 안하고 그냥 엉터리로 대충 알려준다. 10명한테 물어보면 10명 다 다른 길을 알려주는 일도 흔하다.

매일처럼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대할 때 공격적으로 변해있다. 진짜 길거리에서 현지 사람들이 말 걸면 일단 화부터 낸 적도 있다. 이런 성향은 인도 바로 이후에 간 스리랑카에서도 초반엔 계속되었다. 아무래도 외모만 봤을 땐 비슷하게 생겼고 바로 옆나라라 비슷한 줄 알고 똑같이 대했는데, 사실 스리랑카는 인도랑 많이 다르다. 길에서 누가 인사하면 정말 그냥 순수하게 인사하고 싶어서 한 경우가 대부분이지, 돈을 뜯어내보려고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초반엔 "돈 없으니까 말걸지마라" 라고 대답을 한 적도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인도 사람들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괜찮은 사람들도 많지만, 정말 다른 나라에 비하면 외국인을 뜯어먹어보려고 시도하는 사람들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말이다. 인구가 많으니 필연적으로 그럴 수도 있지만.

위에 나열한 3가지는 인도가 아닌 다른 나라에 해당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인도만큼 독보적인 나라는 없었다. 이런 나라에서 도대체 어떻게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라가 이런 분위기니까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정신줄을 잡기 위해 요가와 명상이 발전한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본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인도를 여행하며 배낭여행자로서의 생존능력을 압축적으로 향상 시킬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인도에서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다면 전세계 어딜 가도 살아남을 수 있다. 못 믿겠다면 가보면 된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될 거다.


이렇게 적어 놓고 보면 인도가 뭐가 좋아서 다들 가는가 싶지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매력이 많은 나라이다. 문화와 역사가 풍부하고 나라가 크다보니 어느 도시/마을/지역을 가도 항상 새롭게 느껴졌다. 가는 곳마다 특성이 다르고 보이는 풍경들도 다르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 나름 교통 인프라는 잘 설계 되어있고 물가도 저렴하니 금전적인 부담도 적다. 정말 애증의 나라다.

인도로 휴양 목적으로 오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은 배낭여행자들이다. 배낭여행자들의 고충이 큰 나라이기 때문에, 다른 배낭여행자들을 만났을 때 느끼는 동질감이 다른 나라보다 큰 것 같기도 하다. 길가다가 외국인을 보면 서로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바로 친해질 수 있는 곳이 인도다.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고충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인도 여행자들은 여행 내공이 쌓인 사람들이 많고 정말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과의 만남, 교류 그리고 동행은 정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이 때 만난 사람들하고는 대부분 아직도 연락이 잘 된다. 함께 나눈 추억도 많은 곳이라 그런거 같다.

혹시 인도 여행을 계획하거나 망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난 적극적으로 가라고 추천하고 싶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을 보고 너무 큰 환상을 갖고 가면 안된다. 아름다운 나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정말 더러운 나라이기도 하다.

인도가 자신에게 맞는지 안맞는지는 와서 겪어봐야만 알지만 일단 1주일만 참고 버텨보라고 말하고 싶다. 인도에서 도망(?) 치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1주일을 못 견디고 나가는데, 1주일만 참고 버티면 어느정도 나라의 분위기와 문화(?)에 익숙해질거다. 참는 1주일 동안 동행을 찾으면 더할나위 없이 좋다. 어디 수련원 들어가서 요가만 할게 아니라면 동행은 반드시 있어야 좋다. 안전이나 금전적인 이유도 있지만 정신적으로 의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게 가장 큰 거 같다. 정말 많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는 나라인데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서글프다. 특히 처음 가보는 사람은 혼자 다니다보면 멘탈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가본 곳 보다 가보지 못한 곳이 더 많은 인도. 가보고 싶은 곳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은 나라 인도. 내가 2년동안 배낭여행을 다니며 가장 오래 체류한 곳이기도 한 인도. 매일마다 모든 걸 의심하고 협상하며 다니는 여행이라 힘들긴 하겠지만 다시 간다면 이젠 나도 어느정도 내공이 쌓였으니 이전만큼 전투적으로 다니지는 않아도 될 거 같다. 너무 늦기 전에 기회를 봐서 다시 배낭을 들고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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