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 붉은 마을 그리고 티벳식 조장

아저씨와 헤어진 후 난 이 마을을 둘러보았다. 붉은 색의 집들. 붉은 옷을 입은 승려들. 고도가 높은 탓인지 승려들의 볼까지 붉은 이곳. 70% 이상이 붉은 것들로 이루어진 이 마을에서 붉지 않았던건 간간히 길거리에 쌓여있던 쓰레기 더미 속을 뒤지고 있던 야크였다.

승려들과 일반인들이 불교 공부를 하는 포슈유엔은 마을의 중심에 있고, 거기서 부터 언덕 위를 조금 올라가면 사원이 나왔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찾은 신자들이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이 중에는 혹시 삼보일배를 하며 이곳까지 온 사람도 있는 것이 아닌가 조심스래 추측을 해 본다.

마을을 둘러보고 사원을 둘러본 후, 난 이 마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고 싶어서 더 높은 곳을 향해 걸어갔다. 하지만 언덕 위를 향해 걸어가는 도중, 통행금지의 표지판이 나와서 난 다시 발길을 돌렸다. 다시 사원을 향해 걸어가는데 한 사내가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여~ 넌 조장 보러 안갈거야?"

이곳은 티벳식 장례식인 조장이 이루어지는 곳. 조장이란 시체를 독수리에게 주는 장례식을 말하는데, 여기에선 일반인들도 그것을 구경할 수 있었다. 중국어로는 하늘의 장례식이라는 뜻의 "천장" 이라 표현한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것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인데 난 당연히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연히 보고 싶지. 어딜 가면 볼 수 있는거야?"

"오후 한시부터 조장하는 곳에서 볼 수 있지. 여기서 하는 건 아니고 근처에 있는 곳에 차를 타고 가야한다고. 갈거면 차에 한자리 비워둘게. 왕복 30위안이야."

"오케이 내 자리 한자리 비워둬."

"그래 그럼 사원 옆 호텔 앞에 12시반까지 와."

이곳에서는 매일 오후 한시에 조장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을 관광차원에서 방문한 사람들은 대부분 조장이 어떤 것인지 보고 싶어하기 때문에, 나처럼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이 보이면 호객군들이 먼저 다가와서 영업을 해주니 나로서는 편했다.

하지만 시간도 많이 남았고, 조장하는 장소만 알면 내가 그냥 혼자 걸어서 가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정보수집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호텔 앞에 앉아있던 한 청년에게 난 말을 걸었다.

"혹시 이 근처에 조장하는 곳이 어딘지 아나요?"

청년은 대답했다.

"저도 조장이 어디서 이루어지는지는 잘 몰라요. 근데 보니까 다들 차 타고 어디로 가는 거 같더라구요."

이 청년은 우연히도 영어를 잘했고 조장을 보러가기 까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기에, 난 그의 옆에 앉아서 그와 대화를 했다. 그는 이곳에 몇번 온 적이 있고, 이번에도 며칠 불교 공부를 하러 방문했다고 했다. 자주 와봐서 이곳에서 입구까지 내려가는 봉고차 가격, 그리고 거기서부터 마을로 가는 봉고차 가격을 내게 알려주었다. 이러한 정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르면 사기 당하기 때문이다.

조장을 보러 혼자 가는 것도 괜찮지만 누군가가 같이 가는 것도 괜찮을 거 같아서 난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넌 조장 보러 안갈거야?"

"난 전에 본 적이 있어서 괜찮아. 그리고 전에 티벳에서 4년정도 일하면서 산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많이 봤어. 티벳에서는 정말 눈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차라리 여기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볼 수 있는게 나은거 같더라. 바로 앞에서 보면 너무 적나라해서..."

그래.. 청년의 말대로 독수리가 바로 눈 앞에서 사람의 시체를 뜯어 먹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버틸 수 있을 만큼 나의 정신은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도 며칠 뒤에 티벳으로 가 볼 계획이 있었기에 난 청년에게 티벳이 어떤지 물어봤다. 하지만 청년이 들려준 티벳 이야기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티벳 요즘 관광객들 너무 많이 와서 다 변했어.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야. 어쩌면 여기가 더 나을 수도 있어. 근데 사실 중국 어딜가나 개발이 한창이라 변하지 않은 곳이 없어. 나 티벳에서 4년 일하고 고향에 처음 돌아갔을 때 내 동네가 다 바껴있어서 집에 못찾아갔다고."

청년의 말대로 중국의 개발 속도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건물들이 생기고, 가게들도 자고 일어나면 바뀌어 있을 정도로 빠르다. 이번 여행을 시작한 상해도, 내가 살았던 4년전과 비교하면 너무 많이 바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근데 너 저 위 언덕에 올라가봤어? 저기가 여기서 경치 제일 좋아."

청년은 내가 올라가보려고 했던 언덕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가보려고 했는데 도중에 더 이상 올라가지 말라고 길 막아놨더라고."

"야 여기 중국이야. 그딴거 누가 지키냐. 그냥 올라가도 돼. 아무도 신경 안써."

중국인인 그가 그렇게 말하니 가도 되는 거 같았다. 아직 차가 출발 할 때까진 시간이 남았으니 난 다시 언덕 위를 향해 올라갔다. 통행금지라 되어있던 곳을 지나 언덕 위에 도착하는 동안 누굴 만나는 일도 제지 당하는 일도 없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개 한마리가 나의 유일한 동행이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 언덕 위에 올라 온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이곳에선 포슈유엔을 중심으로 승려들의 집들이 나선형으로 밀집해 있는 모습을 완벽하게 볼 수 있었다. 내가 멈춰서 사진을 찍을 때면 날 따라 온 개는 내 옆에 널부러져서 기다렸다가 내가 이동하면 다시 날 따라오기를 반복했다. 뭐라도 먹을 걸 주고 싶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었던건 초콜렛 과자 뿐이라 아무것도 줄 수 없었던 것이 아쉽다.

만족스럽게 경치를 구경하고 사진을 찍고 내려오니 조장터로 향하는 차에 타는 시간이 되었다. 차는 다른 사람들을 태우고 20분 정도를 달려 조장터에 도착했다. 걸어서 오기엔 많이 멀었던 거리였다.

조장터 앞을 구경할 수는 있지만 그곳에선 실제로 조장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안전을 위해서 인지 철조망이 쳐져 있던 그곳에선 조장터 안의 모습이 적당한 거리에 보였다.

오후 한시가 되자 가족과 스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얀 천으로 둘러쌓인 시체를 조장터로 옮기고 무언가 의식을 치루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어디선가 독수리들이 한두마리 날아오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날 수록 그들은 조장터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이 들어오지 말라고 천으로 가려진 곳 앞에 어마어마한 수의 독수리들이 모여드는데, 한 300마리정도는 되었을까. 그렇게 많은 독수리들을 볼 일은 내 인생에 아마 두번다시 없을 거 같다.

가끔 참을성이 부족한 독수리가 천막을 뚫고 지나가자, 안에 있던 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독수리를 다시 쫓아내곤 했다. 신기했던건 날아서 충분히 조장터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수리들이 천 앞에 모여 기다렸다는 것이다.

이윽고 모든 의식이 끝났는지 사람들은 조장터에서 나갔고, 마지막으로 누군가가 천을 치우는 순간 독수리들은 경쟁적으로 시체에 달려들었다. 날아서가 아니고 말 그대로 뛰어서 달려들었다. 적당히 먼 거리에서 보는거라 수많은 독수리들에게 둘러쌓인 시체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보이지는 않지만, 간간히 독수리가 살점을 뜯어낼 때 튀어 나가는 파편(?)들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은 더 이상 감당이 안되었는지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게 독수리들에게서 나는 냄새인지, 아니면 시체에서 풍기는 냄새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저 무리들 속의 경쟁에 참여하지 못하여 주위를 빙빙 돌며 날고 있는 독수리들이 싸지른 똥냄새 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구경하고 있는 곳에도 간혹 독수리들이 오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똥에 맞을 수 있다.

조장의 모든 과정은 대략 3~4시간이 걸린다고 하는데 관광으로 보러 온 사람들은 한시간 내외로 보다가 다시 돌아간다. 난 이 의식이 어떻게 마무리되는지 궁금해서 기다리고 싶었지만, 다들 떠나가고 나도 그들과 같은 차를 타야 했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조장터를 떠났다.

이 곳에서 보고 싶었던 모든 걸 보고 써다현 마을로 돌아가는 길. 포슈유엔에서 내려오는 봉고차를 세우고 올라탔는데 안에는 날 제외하곤 모두 승려들 뿐이었다. 불교 공부를 한다고 어릴 때 부터 이런 곳에서 생활하는게 참 힘들겠구나 싶었는데, 아이폰으로 테일러 스위프트의 음악을 듣고 있는 몇몇 승려들의 낯선 모습을 보며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버스터미널이라고 하기엔 그냥 공터인 써다현 마을의 터미널에 도착하고 다음날 성도로 가는 버스표를 알아봤는데 이미 매진이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모레 버스를 타야한다고. 그러면 더 이상 볼 일 없는 이 곳에 아무것도 못하고 하루를 더 있어야하는데 그러긴 싫었다. 난 30일짜리 비자라 하루도 낭비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마침 매표소 옆에서 한 아저씨, 아주머니, 그리고 청년이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사연은 즉 아주머니도 청년도 내일 성도로 돌아가야하는데 버스가 매진이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상황이었고, 정체불명의 아저씨는 위로의 말을 건내며 해결책을 찾아보는거 같았다. 나도 같은 상황이라 그들의 대화에 껴서 얘기하고 있는데 때 마침 누군가가 차를 끌고 나타났다.

"여기 내일 성도로 가고 싶은 사람 있습니까."

차에서 내린 사내는 말했다. 그는 핑처 기사였다. 핑처는 개인이 자기 차로 장거리 운송을 하는 차를 뜻한다. 아주머니와 청년, 그리고 나는 달리 방법이 없으니 아저씨와 협상을 시도했다. 요금 시스탬은 특이했는데 조수석이 500위안, 뒷자리가 400위안, 그리고 짐칸 메트리스 위에 앉아서 가는게 350위안이었다.

우리 셋은 모두 가장 저렴하게 가는 방법을 선호했지만, 짐칸에 350위안은 정말 아니었다. 버스가 200위안이 조금 넘는데 짐칸이 350위안이라니. 우리 셋과 정체불명의 아저씨는 기사와 협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내 엉덩이에 무언가가 부딫혔다. 뒤돌아봤더니 승용차였다.

"오우 미안해! 내가 실수로 그만 치고 말았어!"

운전을 하던 여자는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창문을 열고 말했다. 아니 여긴 공터라 엄청 넓은데 실수로 사람을 쳤다고? 그럼 아예 운전을 하질 말아야지! 그 사실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 여자의 태도가 더 어이없었다.

"아니 사람을 쳤으면 차에서 내려서 사과를 해야할 거 아니야!!"

내가 화가나서 소리를 치니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다가오며 말했다.

"워워 진정해. 그냥 실수였다고 하잖아. 이렇게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있고."

그 말을 이으며 여자도 말했다.

"그래~ 실수라고 실수. 정말 미안하다. 내가 바빠서 이만 먼저 가볼게~"

그리곤 여자는 차를 몰며 떠나갔다. 참으로 다이나믹한 나라로군.

그러고 있는 사이 핑처기사와의 협상은 실패했고 결국 350위안으로 가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다. 사실 핑처기사가 이 사람 한명도 아니고, 다른 기사들 찾아서 협상하면 더 싸게 갈 수도 있었을 거 같았지만, 아주머니도 청년도 결국 그 가격에 합의를 했고, 사람이 모여야만 핑처도 출발하기에, 피곤했던 나도 결국 그냥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협상이 끝나자 아까부터 계속 우리 옆에서 대화에 끼어들던 정체불명의 아저씨가 말했다.

"자! 그럼 다 해결됐으니 이제 우리집으로 가면 돼!"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아저씨는 터미널 바로 옆 건물에서 민박을 운영하는 사장님이었다. 난 아직 숙소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었고, 청년과 아주머니는 이미 거기에 묶을거라고 하기에 난 그들을 믿고 따라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집 안에는 왜 이곳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동자들이 많이 있었지만, 전반적인 시설은 가성비가 아주 좋았다. 인터넷이 뭔지도 모르는 사장님이지만 와이파이 속도는 빨랐고, 사장님이 손수 저녁도 만들어주셨다.

참으로 긴 하루 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찾아온 써다. 하지만 그 덕분에 여러 만남이 있었고, 일단 가보면 어떻게든 된다를 처음 느끼게 된, 어쩌면 이런게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해준 곳이다. 그런 감회에 젖으며 난 조금 이른 시간에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4시반부터 나와 아주머니 그리고 청년은 짐칸에 나란히 끼어 앉아 비포장도로 4시간을 포함한 12시간의 고통을 견딘 후에야 성도에 도착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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