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1. 구채구와 황룡으로 가는 길의 이야기

[중국] 1. 구채구와 황룡으로 가는 길의 이야기

구채구와 황룡은 사천성에 있는 자연경관이 멋진 곳이다. 사천성은 그 옛날 서기 200년대에 제갈량이 유비에게 천연의 요새라며 촉나라를 세우도록 진언한 곳인데, 21세기가 된 지금도 이곳에 직접 와보면 아직까지도 천연의 요새라는 기능이 건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난 시안에서 기차를 타고 사천성 북부의 광원으로 간 후, 거기서 부터 버스를 타고 구채구현 버스터미널로 갔는데, 가는 길은 대부분 좁고 굽은 산 길이었다. 중간 중간에는 비포장 도로도 나왔다. 지금도 이렇게 지나기 힘든 곳인데 1800년 전에 이런 곳에서 병력을 이끌고 이동했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출발한지 3시간이 지나 뜬금없이 나타난 가정집 같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3시간을 달렸을 무렵. 산사태가 일어나서 길이 막혀있었다. 운전사도 승객들도 익숙한건지 다들 동요하는 기색은 없었다. 다행인건 이런 산속의 동네에도 불도저가 바로 달려와서 흙을 퍼내고 길을 뚫었다는 것이다. 아마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서 근처 동네에 불도저가 상비되어 있는게 아닐까 예측해본다.

길이 뚫리는 걸 기다리는데 승객중에 한 중국인 부부가 갑자기 짐칸에 넣어둔 자기들 짐 좀 확인해야겠다고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기다리는 동안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운전사와 같이 버스를 내려 짐칸을 확인하더니 갑자기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내 짐이 사라졌다!!!"

그러더니 옆에 있던 여자도 소리를 질렀다.

"내 짐도 사라졌다!!!"

순간 버스 안의 승객들은 동요하며 다들 내리고 각자 자신의 짐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난 배낭을 짐칸에 맡기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확인해 본 결과 다른 승객들의 짐들은 모두 무사했다. 그들의 짐만이 없어졌을 뿐. 그들은 강하게 운전사를 문책하기 시작했다.

"우리 짐 어쩔거여! 보상해!"

말이 빠르고 억양도 조금 달라서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보상 하라는 말만 반복하는 거 같았다. 그러는 동안 길은 뚫렸는데, 이들 때문에 버스는 출발하지 못했다.

정말로 짐이 없어진거면 문제지만, 사실 애초에 그들이 짐칸에 짐을 실었는지가 의심스러운 상황이었다. 중간에 내린 승객이 몰래 가져간게 아닌 이상 짐이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은 애초에 없었으니까. 갑자기 짐칸을 확인하자고 한 것도 그렇고 짐 걱정보다는 무조건 보상만을 외치는 그들이 정황상 조금 의심스럽긴 했다.

결국 그러는 동안 같이 버스에 타 있던 버스 회사의 직원이 부른 경찰이 왔고, 직원이 그들과 함께 경찰서로 가는 것으로 일단락이 된 듯 하였다. 근데 웃으면서 경찰서로 향하는 그들의 모습은 도저히 짐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표정이 아니었다. 그 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보상을 노린 사기꾼들이 아닌가 싶다.


구채구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탔으면 좋았겠지만, 내가 버스를 탄 광원에서는 구채구'현' 버스 터미널로 가는 버스 밖에 없었기에 난 그걸 탔다. 구채구현 버스 터미널은 구채구에서 40키로 떨어진 곳에 있는데, 이 곳에서 구채구까지 가는 대중교통은 없었다.

그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구채구현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자마자 '헤이처' 기사들이 몰려와서 자기 차를 타라고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헤이처'는 직역하면 '검은 차' 라는 뜻인데, 일반인이 돈 받고 사람 태우는 걸 말한다. 엄연히 불법이라서 검은 차 라고 불리우는 사설 택시다.

난 오늘내로 구채구 근처에 예약해 둔 숙소에 가야 했고, 중간에 산사태 때문에 도착시간이 지연되어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으나 다른 승객들은 구채구로 가지 않는건지 헤이처 기사들을 뿌리치고 다들 어디론가 유유히 사라졌다.

헤이처는 비싸기 때문에 히치하이킹을 해볼까 생각도 해봤다. 이곳으로 오기 전 시안의 호스텔에서 같은 방을 쓰며 얘기를 나누었던 폴란드 커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중국에 오기 전엔 중국 요리가 건강하다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난 물어봤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한 거야?"

"중국은 향신료와 한방재료를 쓰는 나라잖아! 그래서 모든 음식이 엄청 건강한 줄 알았어. 근데 막상 와서 보니 맛이 다양해서 좋긴한데 다 기름져서 충격적이었어"

아니 뭐 향신료와 한방재료 부분은 틀린 건 아니지만 폴란드 음식은 어떻길래 그런 환상을 갖게 된 건가. 그래서 다시 물어봤다.

"폴란드 요리는 어떤데?"

"우리는 요리할 때 소금이랑 후추 밖에 안 써~"

그들의 말은 폴란드 요리에 대한 나의 기대를 산산조각 내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그들이 한 말은나에게 다른 로망을 심어주었다.

"우리는 폴란드에서 시작해서 중앙아시아를 거쳐서 여기까지 히치하이킹으로 왔어!"

정녕 그런게 가능 한 건가. 히치하이킹 경험도 없고 아직 여행을 시작하고 2주도 안된 당시의 나에게는 그들의 말이 너무나도 멋져보였다.

그래서 구체구현 버스 터미널에서 헤이처 기사들에게 둘러 쌓인 채 생각해봤다.

'중국어 한마디도 못하는 애들도 히치하이킹 하는데 나도 해볼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난 120 위안짜리 헤이처를 타게 되었다. 막상 히치하이킹을 해보려고 생각하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중국가서 잘못하면 납치당하고 장기적출 당한 다음 박제되서 박물관에 전시 된다' 와 같은 중국괴담이 머릿 속에 떠올라서 쫄았기 때문이다.

헤이처를 타고 가는 동안, 아무리 생각해도 120 위안은 너무 비싼 거 같아서 나 학생이라 돈 없으니까 조금만 깎아 달라고 아저씨에게 닥달했다. 그랬더니 아저씨는 갑자기 차를 갓길에 세우고는 나에게 말했다.

"그럼 80위안으로 해줄게. 대신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봐라."

그렇게 말하며 아저씨는 나에게 이거나 먹으며 기다리라고 사과를 4개 건내주고 차 밖으로 나갔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는데 아저씨는 갑자기 히치하이킹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을 무렵, 차 한대가 멈췄고, 차 안에 사람들이랑 무슨 얘기를 하고 나서 돌아오더니 말했다.

"자 이제 내려. 나한테 80위안 주고 저 차 타면 된다."

"아니 그럼 저 차 타고 또 돈 내라고?"

"내가 얘기 다 해놨으니 그냥 타기만 하면 돼."

상황은 즉, 아저씨가 돈은 벌고 싶지만 지금 가면 어차피 빈차로 돌아와야 되고 멀리가기 싫었으니, 어차피 그 쪽으로 가는 차 하나 잡아서 운전자한테 돈 좀 쥐어주고 날 태워 보내면 모두가 윈-윈이잖아, 라는 상황인 거 같았다.

별 수 없이 새로운 차에 올라탔다.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장족으로 보이는 청년들이 앉아 있었는데, 조금은 무서운 얼굴로 담배를 피우는 그들의 모습에 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핸드폰으로 지도 어플을 켜놓고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차 밖으로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고 있는데, 조수석의 청년이 나에게 담배를 권하며 물었다.

"담배 필래? 근데 너 아까 그 아저씨한테 돈 얼마나 줬냐?"

이들이 아저씨한테 얼마를 받았는지 모르고, 80위안이나 줬다고 하면 자기들한테 돈 더 달라고 할까봐 거짓말을 했다.

"40위안 줬어."

그러자 다시 그 청년은 말했다.

"와~ 아저씨 우리한텐 딸랑 20위안 줬는데. 그래도 그냥 너 데려다 주는거야. 우리 진짜 착하지 않냐?"

당시에는 이 대답을 듣고 '제발 착한 사람들이길 바란다' 라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그들은 정말 착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묶을 숙소 이름을 묻고는 어디인지 몰랐는지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리며 위치를 물어보고 숙소 바로 앞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그러며 나에게 말했다.

"무슨 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황룡 가고 싶으면 데려다 줄 수 있으니 연락하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전화번호를 내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왠지 모를 불안함이 앞선던 당시의 내가 그들에게 연락하는 일은 없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에게 연락을 해봤으면 더 재미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구채구 관광을 마친 다음 날 황룡으로 가는 길.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껴서 버스를 타고 황룡으로 향했다. 구채구 주변 지역 자체가 평균 고도가 2천미터가 넘는데, 황룡으로 가는 길에 넘는 산들은 고도가 4천미터 가까이 되는 곳도 있었다.

고도가 높은 곳은 대체적으로 자연경관이 멋지다. 이건 전세계 어딜가나 통용되는 사실인 거 같다. 그래서 황룡으로 가는 차창 밖으로 멋진 경관이 펼쳐지는 구간이 많다.

하지만 높은 곳으로 간다는 건 고산증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의 경험상 건강한 사람은 고도 3천미터까지는 고산증 예방을 위해 특별히 무언가를 준비해야 할 필요는 없다. 뛰어다니지만 않으면 평소처럼만 해도 고산증에 걸릴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3천미터를 넘기면 고도에 익숙해질 때 까진 천천히 걷는다던지 평소보다 밥을 적게 먹는다던지 하며 조심하는 것이 좋다.

황룡으로 가는 버스는 산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잘 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산사태가 일어난 것도 아니고 버스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자 갑자기 버스 안에 한 여성이 올라타며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황룡이 고도가 높은 곳에 있는 건 아시죠? 높은 곳에 가면 고산증에 걸릴 수 있습니다. 고산증이 뭐냐구요? 높은 곳에 가면 걸리는 병이에요 병! 걸리면 토하고 머리 아프고 장난아닙니다."

뭐지.. 그래서 고산증 조심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건가. 여성은 계속해서 말했다.

"만약 그 높은 곳에서 고산증 걸리면 구조대원 불러도 오래걸리고 돈도 엄청나게 많이 들어요. 그래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고산증을 예방해주는 약입니다! 단돈 100위안!"

여성은 그냥 장사꾼이었다. 그녀가 팔고 있는 약은 사천성 약국에서는 비교적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이었다. 내가 전에 운남성 샹그릴라에서 고산증에 걸렸을 때 먹어 본 적이 있는 약이었다. 내 기억에는 한박스 10병 정도 들어있는게 100위안이었는데 이 여성은 지금 30미리 정도되는 한병을 100위안에 팔고 있었다.

"자 이걸 살 수 있는 기회는 여기가 마지막이에요. 예방으로 지금 하나 마셔두고 혹시나 올라가서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면 마실 거 하나 준비해가면 더욱 좋아요! 가서 고산증 걸리면 정.말.로. 큰일납니다!"

저딴걸 누가 100위안이나 주고 사나 싶었는데 승객들 중 60% 정도는 무서웠는지 정말로 구매를 하는 것이었다. 내 옆에 앉아있던 청년은 2병을 구입하고는 한병을 마시며 나에게 말했다.

"너도 빨리 사. 그러다 고산증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

"난 안 마셔도 돼. 그냥 천천히 다니기만 하면 문제 없을거야."

고도가 높은 곳을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들이 불안해지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 역시도 처음엔 그랬으니까. 하지만 그런 불안심리를 이용하여 바가지 장사를 하다니 악질이다. 설령 저 약이 정말 효과가 있는 약이라고 해도 이곳은 중국. 저 여인이 진짜 약을 가져온건지 가짜 약을 가져온건지 알 수가 없다.

서양에도 고산증 예방약으로 널리 알려진 '다이목스' 라는 약이 있다. 누군가는 비아그라를 먹으면 고산증 예방이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정말로 이러한 약들이 예방을 해주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전세계에 고도가 높은 곳들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본 결과, 약을 먹어도 걸릴 사람은 걸리더라. 그리고 고산증 증세가 나타나면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거나 고도가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방법 밖에 없다. 약 먹어봐야 아무 소용 없다.

어찌됐든 그렇게 만족할 만큼의 수익을 벌어들인 여인은 버스에서 내리고, 우린 황룡 입구에 도착했다. 난 조금 느긋하게 보고 싶어서 80위안을 내고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갔다. 마음 것 경관을 즐기고 사진을 찍고 걸어서 내려오는 길. 버스 앞자리에 앉아 약을 사 마시던 여성 분이 고산증 증세를 호소하며 남자친구의 부축을 받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약이 효과가 없었던걸까 약이 가짜였던걸까. 약을 먹었는데 왜 이런거냐며 눈물 짓고 있던 여성 분을 보며 알 수 없는 씁슬함이 느껴졌다.


#구채구 사진들

듣던 대로 구채구는 멋진 곳이었다. 얼마전 지진이 일어나서 모습이 바뀌었다고 한다.

호수만 있는게 아니다. 폭포도 있다.

물이 정말 투명하다.

바다처럼 보이는 장해의 모습.

다섯가지 색깔이 보인다고 해서 오채지 라는 이름이 지어진 연못.

호수 주변에 산책로가 조성 된 곳도 있지만, 공원안은 넓기 때문에 모든 곳을 돌아보기 위해선 셔틀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한다.


#황룡 사진들

황룡으로 가는 도중 경치가 너무 멋져서 버스가 멈췄다. 고도가 높은 곳이다보니 구름 위에 있었다.

걸어서 올라가면 돌아가는 버스 시간에 맞추기가 촉박할 수 있으니 케이블카를 타는 것이 좋다.

케이블 카를 내리고 꼭대기까지는 한시간정도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혹시나 고산증세를 보일 사람들을 위해 산소를 공급할 수 있는 곳이 몇군데 준비되어 있다. 물론 유료이다.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 겨울 시즌에는 물이 말라서 볼 수 없을 수도 있다고 했는데 다행히도 물은 마르지 않았었다.

사진에 잘 담지 못해서 아쉽다.

걸어내려가는 동안에도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었다.

호두를 까먹는 다람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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