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어느날. 난 평소와 다름 없이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도시락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하나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그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다룬 다큐였는데, 그냥 열차를 타고 이동하며 열차의 역사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이 남북으로 갈라지기 전에는 경의선까지 이어져있었다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 올림픽 마라토너로 유명한 손기정 선수가 베를린에 갈 때 무려 80일 정도 이 열차를 타고 갔다고 한다. 그 동안 제대로 된 훈련도 하지 못했을텐데 어떻게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던 걸까.

사실 기차 여행에 대해 딱히 낭만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왠지 모르게 세계에서 가장 긴 열차 구간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조금 검색을 해보니 마침 한국인은 무비자로 관광할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일도 널널한 시기 였기에 이 영상을 본 2주후에 난 팀원들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시베리아 횡단 하고 오겠습니다.'


배낭여행을 하는 게 처음은 아니지만 혼자서 떠난 배낭여행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러시아는 처음 가 보는 유럽. 하지만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자마자 곤란한 상황을 겪게 된다.

원래는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들어갈 예정이었는데 저녁 7시라는 나름 이르다면 이른 시각에 이미 공항철도는 운행을 하고 있지 않았다.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공항 안내데스크에서 손짓 발짓 해가며 겨우겨우 시내로 가는 마지막 버스라는 것에 탄 것 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어디서 내려야 할 지 몰랐다.

버스는 40분 정도를 달리고 한 정류장에 멈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기에 나도 불안해서 버스 안에 같이 탑승해 있는 매표원 아주머니에게 물어봤다.

"블라디 보스톡 스테이션? 스테이션?"

아주머니는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다! 다! 다! 다! 다!"

내가 알고 있던 러시아어가 딱 2가지 인데 하나는 '감사합니다' 라는 뜻의 '스파시바', 그리고 또 하나는 '네' 라는 뜻의 '다' 였다. 아주머니가 너무 무섭게 '다 다 다 다 다' 라고 하기에 얼떨결에 나도 버스에서 내리고 말았다. 당시엔 내가 뭘 잘못했기에 이렇게 화를 내는 건가 싶었지만, 러시아인들이 얘기하는 톤이 원래 그렇다는 걸 여행 중반 쯤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아주머니의 말만 믿고 내렸는데 주위를 둘러봐도 기차 역으로 보이는 곳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럴까봐 공항에서 심카드를 샀는데 뭐가 잘못된건지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지금이야 구글지도도 구글번역도 오프라인 기능이 탑재 되어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런 기능이 없었다. 그리고 Maps.Me 라는 최강의 오프라인 지도 앱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던 시절. 난 블라디보스톡에 오자마자 미아가 되었다.

불안함이 엄습해오니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러시아 간다고? 위험할텐데? 경찰 절대 믿지 말고 여권 절대 보여주지마!'
'러시아? 스킨헤드 조심해라.'

경찰도 믿을 수 없고 만약에 주변에 빡빡이가 보이면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는 나라에서 미아가 되다니... 날도 어두운데 점점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따지고 보면 나의 잘못이긴 하다. 러시아어로 역을 뜻하는 '복잘' 정도는 알아두고 왔어야 했다. 그렇게 말도 안통하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 이리저리 왔다 갔다 만을 반복하고 있었는데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어디로 가니?"

오! 영어다! 드디어 말이 통하는 사람이다!

"제가 지금 블라디보스톡 역으로 가야하는데, 버스 아주머니가 여기서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데 역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요."

"당연하지. 여긴 블라디보스톡 역이 아니야."

도대체 그 아주머니는 내가 뭘 물어본 거라고 생각한 걸까...

"사실 나도 너랑 같은 버스 타고 여기서 내렸어. 너가 버스에 탈 때 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헤매고 있는거 같아서 도와주려고 말 건거야. 역까지 가는거면 여기서 나랑 버스 같이 타면 돼."

그녀는 블라디보스톡 공항에서 근무하고 있던 의사로서 퇴근하고 집에 가는 중이라고 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내가 오늘 밤 묶기로 한 숙소에 직접 전화해서 위치도 확인해주고 버스를 내리고 나서도 숙소 앞까지 날 데려다주었다.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난 말했다.

"너무 고맙습니다. 보답으로 밥이라도 한끼 대접하고 싶어요."

"괜찮아. 이미 시간도 많이 늦었고. 좋은 시간 보내다 가!"

"아니 그럼 내일이라도..."

"신경쓰지마. 나 간다!"

그렇게 그녀는 쿨하게 떠나갔다. 러시아에 오기 전엔 뭔가 무서운 이미지가 가득한 나라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한 인상이 한번에 다 바뀌게 되었다.

'말투가 차갑고 퉁명하게 들려도 다들 따뜻한 사람들이구나'

그리고 다음 날 부터 이틀 동안 블라디보스톡 시내를 둘러본 후,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탑승하였다.


#블라디보스톡 사진들

 

블라디보스톡 시장에 있던 김치 전문점

아르바트 거리. 러시아의 많은 도시들의 중심가는 다 아르바트 거리라고 불리우는 듯 했다.

독수리 전망대의 풍경. 웨딩사진 촬영지로 유명한 듯 하다.

해군 기지가 있는 도시 다운 풍경.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종점을 의미하는 기념비


여행자들이 공유한 러시아 여행에 대한 정보, 경험, 그리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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