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멜에서의 즐거운 나날들을 뒤로 하고 나와 베트남계 미국인 T군은 포카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다. T군은 나에게 끝까지 안나푸르나 서킷으로 가자고 꼬셨지만 난 이미 ABC로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계획도 ABC로 짜두었기 때문에 바꾸기가 싫었다. 난 버스를 타고 포카라까지 가면 되지만 서킷으로 향하는 T군은 도중에 내려서 다른 마을로 가야했다.

우리가 탄 버스는 중간에 고장나서 다른 버스로 갈아타야했기에 일정이 2시간 정도 지연 되었다. 난 어차피 포카라까지 가서 숙소 구하는거 외에는 할게 없었지만, 서킷으로 가는 T군은 도중에 내려서 다른 마을로 가는 차를 타야했기 때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었다. 이윽고 T군이 내려야 하는 곳에 도착했고, 조심해서 트레킹하고 나중에 포카라에서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뒤로 조금은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던 T군은 패기 있게 버스에서 내렸다.

포카라에 도착하고 숙소를 찾은 후 내일 출발하기 전에 필요한 것들을 알아보고 다닌 뒤 방에 돌아와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내 전화기가 울렸다.

"여보세요?"

"야 나 T인데 지금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어. 원래 가야되는 마을까지 가는 버스가 오늘은 더 이상 없다고 해서 무슨 차에 돈 비싸게 주고 어디 숙소에 왔는데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서킷 트레킹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겠어. 그래서 말인데 내가 내일 아침 가능한 일찍 포카라로 갈테니까 너랑 같이 ABC트레킹 가면 안될까?"

우리가 탄 버스가 중간에 고장나서 지연이 됐기 때문에, 그 이후에 타야했던 교통편을 타지 못한 모양이었다. 흥정 같은 것도 제대로 못하는 T군은 이미 차비로 6천루피 정도 뜯긴 모양이었다. 아마 이대로 혼자 서킷을 돌 자신이 없었던 모양. 나도 이대로 그를 혼자 두기엔 불안했기 때문에 대답했다.

"올 때까지 숙소 방에서 기다릴테니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와~ 내일 보자!"

다음 날, 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원래 ABC를 같이 가기로 했던 카우치서핑앱에서 만난 러시아인 A군과 함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쯤이나 되야 도착할 것으로 생각했던 T군은 10시에 도착하는 기염을 토했다. 괜찮냐고 묻는 나의 말에 그는 대답했다.

"거기에 단 한순간도 있고 싶지 않아서 어제밤에 잠도 설쳤어. 새벽5시부터 포카라 갈 수 있다고 하길래 밤새고 그냥 알려주는데로 이것저것 타고 왔지."

내가 묶고 있던 숙소는 시내 북쪽 끝자락이라 남쪽 끝자락인 버스터미널에서 걸어오면 한시간 정도 걸리는데 그걸 또 걸어서 왔다고 하니 트레킹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고생을 많이 했다.


트레킹을 하러 떠나기 전, 난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포카라에 있던 ATM을 모두 찾아가봤다. 하지만 어느 기계도 안에 현금이 동나서 돈을 뽑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트레킹을 시작하는 나야풀 ATM은 괜찮겠지 라며 희망을 걸고 나야풀에 도착 후 바로 ATM을 찾았지만 이 곳 역시 돈을 뽑을 수 없었다. 난 당시 8천루피가 조금 넘는 현금을 들고 있었는데 과연 이걸로 충분할까. 시작부터 그런 불안을 안고 우린 트레킹을 시작했다.

산 속에서 돈 쓸 일이 뭐가 있는가 싶겠지만 일단 먹을 걸 사먹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 숙소 값은 흥정해서 공짜로 자도 먹을 건 흥정할 수가 없다.

첫 숙소에 도착하고 식당에서 메뉴판을 보았을 때 난 알게되었다. 8천루피는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라는 것을. 달밧이 400루피 였고 볶음밥 볶음면 등의 메뉴가 200~300루피 였다. 하루 세끼를 가장 저렴한 메뉴로 먹어도 600루피. 그렇게 다니면 10일 버틸 수 있을 거 같지만 문제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록 음식 값은 비싸진다는 것. 차로 가지 못하는 곳은 모두 사람이 물건을 옮기기 때문이다. 음식이 얼마나 비싸질지 모르니 돈을 함부러 쓸 수도 없는 상황. 첫 날 저녁은 250루피 짜리 야채볶음으로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달래고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배고픔에 눈을 뜨고 아침부터 달밧을 주문했다. 리필이 무료인 달밧으로 배를 가득채우고 다음 숙소에 짐을 풀 때 까지 버티는 방법 밖에 없었다. 시내에서 하던 거처럼 리필을 3번째 정도 시키니 이제 없다며 그만 먹으라고 달밧 대신 욕을 먹었다.

점심은 거르고 다음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물로 배를 채우며 버텼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에 가서 메뉴를 봤는데 달밧이 500루피였다. 너무 비싸다... 그러던 도중 내 눈에 들어 온 메뉴가 있었다.

"Boiled Potato 200"

삶은 감자 200 루피. 그 날 저녁에 난 삶은 감자를 시켰다. 감자 8개가 삶아져서 나온게 전부였다. 난 당분과 염분 그리고 칼로리를 섭취하기 위해서 무료로 테이블에 비치되어있는 케찹과 소금으로 감자를 범벅시켜서 먹었다. 그리고 감자 2개를 휴지에 싸서 챙겼다.

그리고 또 다시 다음 날 아침. 달밧이 비싸니 300루피 짜리 볶음밥을 시켰다. 다행히도 양은 많았지만 점심 전에는 배가 꺼졌다. 오후 2시쯤엔 정말 죽을 거 같아서 어제 챙긴 감자 2개를 먹었다. 그랬더니 거짓말처럼 힘이 솟아나서 그 힘으로 다음 숙소에 도착했다.

그런식으로 달밧이 450루피 이하일 때는 아침에 달밧을 먹고 아닐 때는 무조건 그 식당에서 가장 양이 많은 볶음밥 혹은 볶음면을 먹으며 배를 채웠다. 점심은 무조건 굶고 물배를 채우거나 전 날에 남겨놓은 감자를 먹었다. 저녁은 삶은 감자가 있는 곳에선 감자를, 아닌 곳에선 다른 사람들이 시킨 것들을 보고 무조건 양이 많은거로 배를 채우기를 반복. 남들은 식당에서 차도 시키고 코코아도 시키고 간식도 시키고 하는데 그 모습들을 보며 난 물배를 채웠다.

그런 나의 안쓰러운 모습을 보며 T군은 자기가 사줄테니 걱정말고 먹으라고 했지만, 난 이왕 이렇게 된 거 끝까지 한번 해보자는 쓸 때 없는 오기가 생겨서 마음만 받았다. 그렇게 난 트레킹 하는 동안 하루 평균 지출 600루피라는 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트레킹을 하며 내가 쓸 때 없이 오기를 부린건 지출을 아끼는 것 만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트레킹을 하는데 필요 없는 짐들은 숙소에 맡겨놓고 온다. 먹을 건 어차피 사먹기 때문에 사실 딱히 들고 가야 할 짐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난 미련하게도 모든 짐을 다 짊어지고 갔다.

트레킹을 하기 전에 포터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는데 초보 포터가 20키로짜리 짐부터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다. 내 짐 모두와 트레킹에 필요해서 렌트한 용품들을 합치니 20키로 정도 였는데, 어차피 내 짐이니까 다 들고 가보자 라는 쓸 때 없는 오기를 부렸다. 포터도 20키로 드는데 나라고 못할거 있겠어? 나도 포터에 도전한다! 뭐 이런 가벼운 마음으로 부린 오기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미친짓이었다. 너무나도 힘들었다. 트레킹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왜 이 짐들을 다 들고 오려고 했을까 라는 후회가 막심했다. 숙련된 포터들은 자기 몸무게보다도 무거운 냉장고, 태양광패널 이런걸 이고 올라간다는데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데 짐까지 무거운 걸 들고 다녔기 때문일까. 트레킹을 마치고 포카라 숙소에 체크인 한 후 샤워를 하려고 옷을 벗고 거울을 봤는데 살이 엄청 빠져있었다. 트레킹 전엔 보이지 않던 갈비뼈들이 선명하게 들어날 정도로 내몸은 말랐있었다. 단 9일만에 일어난 일이다. 이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짐도 무거워서 너무나도 힘들었던 경험. 하지만 이 경험은 추후에 겪게 될 많은 고난들을 이겨낼 수 있는 믿거름이 되었다. 특히 트레킹을 하다가 힘든 일을 겪으면 이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내가 그런것도 참고 극복했는데 이걸 극복 못하겠어?'

단순하지만 지금도 날 움직이는 원동력중에 하나다. 하지만 이 날 이후 트레킹을 하러 갈 땐 거의 아무런 짐도 안들고 간다. 짐은 무조건 가벼운게 최고다.


ABC에 도착하여 짐을 풀고 식당에 갔더니 한국에서 오신 아저씨 아줌머니들이 많이 계셨다. 그 중에서 어디선가 많이 본 얼굴을 발견했는데 다름 아닌 한국인 최초로 안나푸르나 등정에 성공한 박정현 대장님이셨다. 대장님이 출연한 다큐를 많이 봤는데, 다큐에서 보던 사람이 눈 앞에 있으니 신기했다. 그것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만나다니! 가서 인사를 드렸더니 다른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한국인이냐며 이것저것 간식거리를 많이 챙겨주셔서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대장님은 이분들을 베이스캠프까지 인솔하신 것이었다.

이분들은 단순히 트레킹만 하러 온게 아니고 무슨 다큐를 찍으러 온 거라며 나한테도 인터뷰 하라고 하셨다. 먹을 것도 얻어 먹었기 때문에 카메라에 대고 인터뷰를 하긴 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전혀 기억이 안난다. 촬영하고 있다는 다큐 제목도 기억이 안나서 찾아볼 수도 없다.

T군에게 대장님이 어떤 분인지 알려주니 마침 며칠전에 생일을 맞이하여 25살이 된 그는 대장님께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했다.

"25살 때 꿈이 무엇이었나요?"

그러자 대장님 왈.

"난 24살 때 저기 정상에 올라갔다 왔어~ 그러니 꿈은 아마 에베레스트 아니었을까?"

그 대답을 듣고 T군은 벙쪄서 할 말을 잃었다. 그런 그에게 난 말했다.

"T군.. 어쩔 수 없어.. 너도 이제 저기 정상에 갔다가 에베레스트 가야돼."

그러자 T군.

"음.. 아니야 난 다른 꿈을 찾아볼게."

무슨 질문을 해도 유쾌하게 받아주시고 사진도 같이 찍어주신 박정현 대장님은 한국분들을 다시 인솔하여 내려가시기 전에 박영석 대장님의 기림비에 가서 묵념을 하셨다. 박영석 대장님은 안나푸르나에 코리아 루트를 개척하러 가셨다가 실종이 되시고 아직 발견되지 않으신 산악가이시다.

내려가시기 전에도 환하게 웃으시며 여행 조심히하고 꼭 자기가 원하는 뜻을 이루라며 격려해주신 박정현 대장님. 지금은 탐험가로 활동하고 계신 그 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 또한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 후 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각종 트레킹을 섭렵하고 현지 사람들과 외국인들에게 '크레이지 코리안 워킹 머신' 이라는 칭호를 얻는 배낭여행자가 되었다.


팀스 체크인을 하면 공식적으로 트레킹이 시작된다.

푼힐 전망대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저녁엔 무료로 올라갈 수 있다.

푼힐 전망대에서 본 일출. 아침엔 입장료를 받았다. 일출이 멋지긴 했지만 너무 추워서 덜덜 떨면서 기다린 기억이 있다.

삶은 감자 시키면 정말 감자만 이렇게 나온다.

당나귀로 짐을 실어나르는 모습도 간간히 보인다.

가다보면 이런 간이 상점이 나오기도 한다.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티벳 깃발.

우린 항상 해가 지기 전엔 숙소를 구하고 손빨래를 했다.

셋째날에 묶은 경치가 멋졌던 Mountain Discovery Lodge

학교에 가는 아이들의 모습. 둘 다 이 산길을 슬리퍼 신고 등교중. 남자아이는 벌써부터 포터들처럼 머리에 가방을 메고 다녔다.

세계적인 산악가 엄홍길 대장님이 세우신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사진을 찍어달라며 보채기에 한장 찍어서 보여줬다.

플러그는 항상 쟁탈전이 펼쳐진다. 여긴 플러그 한번 쓰는데 100루피 였다. 그나마도 베터리 방전되면 충전이 안된다.

가이드와 포터들은 숙소에 도착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손님들과 떨어져서 그들끼리 지낸다. 숙소 뒤에 별도로 만들어진 작은 공간에 모여있길래 난 찾아가서 같이 놀았다. 가이드들은 영어를 잘해서 네팔 이야기, 자기들 일에 대한 고충등을 나에게 알려주었다. 추우니까 술 마셔야된다며 네팔 술인 락시도 나눠줬다. 락시는 소주에 물 탄 거 같은 맛인데, 달밧이랑 락시 파워로 일하는거라고 이거 두개 없으면 힘들어서 일 못한다고 한다. 가끔가다 대마초도 피운다. 원래 네팔에서도 대마초는 불법인데 가이드와 포터들은 오고 가며 많이 따서 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촘롱부터 시누와로 가는 길에 많이 자라는데, 타멜이나 포카라에서 길가다 보면 흔히 만나는 대마초 파는 사람들은 히말라야에서 구해온 것을 파는 거란다. 난 대마초를 한번도 안 피워봐서 잘 모르지만 퀄리티는 별로 높지 않다고 한다. 한 포터는 자기 엄청 많으니까 그냥 준다며 나한테 한봉다리를 주려 했지만 난 정중히 거절했다.

넷째날 묶은 밤부게스트 하우스에 붙어있던 태극기. 향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트레킹을 했는데 트레커들이 붙여놓은 국기가 붙어있는 숙소에서는 한국 국기가 빠져있는 걸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다. 한국 사람들 대단하다.

달밧이 너무 비쌀 땐 볶음밥을 주로 먹었다. 양이 엄청 많지만 하루종일 20키로 짐 들고 산길을 오르락 내리락 했기 때문에 배는 금방 꺼졌다.

트레킹을 시작한지 6일만에 도착한 ABC. 난생 처음 본 멋진 광경에 난 넋을 잃었다. 이 때 이후로 난 어느 나라에 가나 트레킹부터 알아보게 되었다. 이거야 말로 내가 보고 싶던 경관이며 원하는 여행이라는 걸 이곳에서 확신하게 되었다.

ABC 숙소에서 팔던 네팔 럼주 쿠쿠리. 트레킹을 하는 동안 자주 만난 프랑스 신혼부부를 인솔하던 가이드가 추위를 녹여야 한다며 사서 같이 마셨다. 너무 자주 만나서 얘기도 많이 했는데 네팔의 정세, 역사, 부족들간의 마찰 등 네팔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그는 나라의 미래에 대해 걱정이 많았다.

ABC에선 밤이 되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별들을 볼 수 있다. 문제는 밖이 너무 추워서 오랫동안 보기 힘들다는 것. 카메라 베터리도 순식간에 방전되서 사진도 겨우 건졌다.

일출의 빛을 받으며 금색 빛을 띄는 안나푸르나.

ABC숙소 뒷편에는 안나푸르나 등정을 도전하다가 목숨을 잃은 사람들을 기리는 기림비들이 세워져있었다.

내려오는 길에 지누단다에 있는 온천에 들렸다. 뜨끈한 온천에 들어갔다가 바로 옆에 차가운 강물에 들어갔다가를 반복하다보면 트레킹의 피로가 풀린다.

트레킹을 시작할 땐 3명이었는데 내려올 땐 어느새 10명이 되어있었다. 경치를 보는 것도 좋았지만 가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밤마다 어울리는 것도 너무나도 재미있었다. 마지막 밤엔 조촐하게나마 캠프파이어를 하며 각자의 이야기 보따리를 풀었다.


여행자들이 공유한 네팔 여행에 대한 정보, 경험, 그리고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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