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티벳을 거쳐 네팔로 입국 할 예정이었는데 지진의 여파로 국경이 닫혔서 그 루트로 가는게 불가능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홍콩에서 비행기로 넘어가는 방법으로 일정을 바꿨다.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한 건 이미 해가 진 오후 8시경. 공항 밖으로 나와보니 도저히 버스 같은 건 찾아 볼 수 없을거 같은 카오스 상태. 마침 공항에서 심카드를 구입했는데 판매원 아저씨가 자기가 타멜까지 데려다 줄 수 있다고 하기에 1500 루피라는 조금은 비싼 가격을 주고 타멜에 예약해 둔 숙소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인도 비자를 신청하러 비자센터에 갔다가 네팔여행국에 가서 ABC트레킹에 필요한 허가증 발급까지 마치고 숙소로 돌아왔다. 반나절 동안 돌아다니며 구경한 카트만두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카오스 상태였다. 첫 인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개판이다' 였다.

개판이라 빨리 떠나고 싶었지만 인도 비자 발급에는 대략 1주일 정도가 소요되니 어쩔 수 없이 카트만두에서 일주일을 보내야 하는 상황. 어떤 사람은 비자 발급을 기다리는 동안 트레킹을 갔다 온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할까 고민을 하며 여행자의 거리라는 타멜을 구경하려고 다시 숙소를 나섰다.

타멜에 대한 첫 인상도 사실 좋지만은 않았다. 지진 때문인건지 원래 이런건지 역시나 '개판이네' 라는게 솔직한 첫인상이었다. 단 반나절만에 카트만두라는 도시에 점점 질려가고 있는데 갑자기 한 사내가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안녕! 어디서 왔니?"

타멜 안에서 걷다보면 각종 삐끼들, 특히 여행사 직원들이 투어 신청하라고 말을 걸어오기 때문에 난 그냥 무시하고 걸었다. 하지만 그는 나를 따라오며 계속 말을 걸었다.

"나 나쁜 사람 아니야. 내가 카트만두 가이드 해줄게. 돈 필요 없어. 공짜야. 그냥 오늘 일도 끝났고 집에 가기 전에 여행자들 도와주려고 그러는거야."

미심적었지만 마침 심심하기도 하고 딱히 어딜 혼자 찾아가며 관광해 볼 기분도 아니었기에 그냥 그가 안내해주는데로 따라가보기로 했다. 나중에 돈 요구해도 그냥 돈을 안주면 그만이니까.

그의 이름은 카라니. 기대와는 다르게 그는 카트만두의 이곳저곳을 잘 안내해주었고, 사원이나 네팔 문화에 대해서도 알려주었으며, 지진이 일어나기 전과 일어난 후에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 가이드로서의 임무를 아주 훌륭하게 수행해주었다. 중간에 가끔 상점에 데려가긴 했지만 뭘 사라고 강요하진 않았다. 3시간 정도 그를 따라다니고 유네스코에도 등록 된 Bouda Stupa를 둘러 본 후 그는 내게 말했다.

"이 근처에 내 집이 있는데 우리집에 널 초대하고 싶어. 가서 차나 한잔 하자."

여행자로서 현지인의 집에 초대 받는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 나라 사람들의 실제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고 문화체험 하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경험은 없다. 지금까지 보여 준 모습을 봐서는 딱히 나쁜 사람 같지도 않았기에 난 그를 따라갔다.

"여기가 우리 집이야! 들어와!"

그가 자기 집이라고 보여준 곳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 그가 살고 있던 곳은 지진 피난민 캠프. 나무 판자로 만들어진 성인이 두명 들어가면 꽉 차는 아주 작은 공간에 파란색 비닐을 씌운 것이 전부였다. 우리가 도착했을 땐 마침 그의 아내라고 하는 사람이 근처 우물에서 작은 아이들 2명을 씻기고 있었다.

안은 너무 비좁기 때문에 우린 바깥에 있던 작은 의자에 앉았다. 이윽고 아내 분이 달달한 차이 2잔을 내어주셨고, 난 차이를 한모금 마시며 눈 앞에 갑자기 벌어진 충격적인 상황에 대해 카라니에게 물었다.

"저 작은 아이들 너 아들들이야? 여기서 가족 4명이서 살고 있는거야?"

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응. 귀엽지? 4살이랑 1살이야. 비좁긴 하지만 어떻게 살 수 있긴 해."

난 도대체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네팔에 오자마자 첫날부터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광경을 보았기 때문인지 말문이 막혔다. 그런 나를 보며 그는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난 사실 원래 구두 수선공이었어.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여느날과 다름 없이 길거리에 도구를 펼쳐두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땅이 엄청나게 흔들리더라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사방팔방으로 달렸는데 나도 급하게 도망간다고 도구를 모두 두고 왔거든. 당연한 일이지만 나중에 도구 찾으러 갔는데 이미 없어져 있더라."

"그래서 지금은 무슨 일 하고 있는데?"

"지금도 구두 수선 일 하고 있어. 할 줄 아는게 이거 밖에 없으니까. 근데 제대로 된 도구가 없고, 길거리에 펼쳐놓을 도구가 없으니까 사람들이 내가 수선공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지나치더라고. 지금은 수입이 거의 없는 상태야."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건데?"

"다시 구두 수선 도구를 구해야해.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내가 구두 수선 도구를 구할 수 있게 조금만 도와주면 안될까? 돈을 달라는게 아니야. 돈으로 받으면 바로 써서 없어지지만 수선 도구를 사면 그걸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어. 생선을 주기보단 생선을 잡는 법을 알려주는게 중요하잖아."

돈 받아서 그 돈을 다른데 쓰지 말고 수선 도구 사면 되는거 아닌가 싶었지만 돈 달라고 하는건 구걸하는 거 같으니 수선 도구 구하는 걸 도와달라고 하는건가. 여기서 내가 그냥 돈을 주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거 같아서 난 다시 물어봤다.

"그래서 그 도구 어떻게 구하는데?"

"이 근처에 도구를 파는 곳이 있어. 같이 가줄 순 없을까?"

그의 말은 미심적은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어린 아이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 가슴 아팠다. 무언가 사기를 치고 있는 거 같았지만, 내가 속는 것으로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다면 그걸로 괜찮다는 생각으로 난 일단 그를 따라가기 보기로 했다.

그가 나를 데려간 곳은 피난민 캠프 근처에 있던 어느 한적한 골목길에 있던 허름하고 좁은 집 안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이 그런 곳에 따라갔다 싶다. 만약 헤코지를 당해도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그런 곳이었다. 안에 들어가보니 딱 봐도 사기꾼 처럼 생긴 사내 한명이 있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되지만 이 사람은 200% 사기꾼의 얼굴이었다.

"안녕하세요. 구두 수선함 좀 볼 수 있을까요?"

카라니는 사내에게 말했다. 이 사내는 인도에서 온 상인으로 내일 다시 인도로 떠나며, 한달 정도 후에 다시 이곳에 돌아올거라고 했다. 그리곤 마지막 남은 하나라며 침대 밑에서 허름한 검정색 가방 하나를 꺼냈고, 가방 안에는 나무로 만들어진 구두 수선함과 오래된 수선 도구들이 들어있었다. 누가봐도 새것이 아닌 엄청 낡은 물건들을 보며 카라니는 말했다.

"우와~ 이것만 있으면 다시 구두 수선일을 할 수 있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아주 기계적인 말투였다. 카라니는 연기를 너무 못했다.

"그렇지? 이게 마지막 남은 하나라고. 지금이라면 단 돈 2만루피에 줄게."

인도인은 카라니와는 다르게 자연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2만루피. 여행자인 나도 하루에 천루피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네팔에서 이딴 쓰레기로 한국돈 20만원가량을 받으려고 하다니. 한국에서 완전 새거로 깔맞춤해도 그정도 가격은 안한다.

"와~ 엄청 비싸네~"

난 영혼 없는 말투로 대답했다. 그랬더니 인도인은 말했다.

"깎아줄 수 있어. 얼마까지 할 수 있는데?"

이 때 부터 그와의 기 싸움이 시작됐다. 난 대답했다.

"내가 살 거 아닌데? 얘가 사는건데? 카라니 너 2만 루피 있어?"

카라니는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니.. 난 그런 돈 없어.. 하지만 이 도구가 있으면 돈을 벌 수 있어.."

그 말을 듣고 인도인은 재차 말했다.

"얘는 돈이 모자라니까 너가 좀 도와주는거 아니었어? 깎아줄테니까 가격 얘기해봐."

그렇게 난 나에겐 필요하지도 않은 쓰레기를 위해 흥정을 시작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6천루피까지 가격이 내려갔다.

"더 이상은 안된다. 6천루피 이하로는 절대 안돼."

인도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근데 그런건 내가 알 바가 아니다.

"응 그렇구나. 근데 난 그런 돈이 없어. 카라니 넌 어떻게 할거야?"

"나도 그런 돈 없어.. 고마워. 이만하면 됐어 우리 이제 그냥 가자."

카라니는 뭔가 겁에 질린 표정과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대답했다. 방금 전까지의 연기하는 톤이 아니었다. 내가 흥정을 하는 동안에도 인도인의 눈치를 계속 살피는게 조금 이상하다 싶긴 했는데 도대체 이 둘의 관계는 뭘까. 이 인도인에게 카라니는 무언가 약점을 잡힌 걸까. 내가 이대로 나가면 나중에 헤코지를 당하는걸까. 사실 이 모든 것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지만, 카라니의 아이들이 내 눈에 밟혔다. 그래서 결국 난 지진 피해자에게 기부하는 셈 치고 말했다.

"내가 지금 가진 전부가 4천루피거든. 이걸로 해주면 사고 아니면 우린 그냥 갈게."

하지만 인도인은 완강했다.

"6천 루피 이하는 절대로 안된다!"

"그럼 어쩔 수 없네. 카라니, 이제 그만 가자."

그렇게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떠나려고 하자 인도인은 말했다.

"야 그럼 지금 4천루피 주고 이 도구 가져가고 나머지 2천은 얘가 일해서 후불로 내는거로 하자."

"카라니 어떻게 할래? 너가 정해."

카라니에게 물으니 카라니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인도인에게 4천루피를 건냈고, 우린 수선 도구가 들어있던 검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다시 카라니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 카라니는 연신 나에게 고맙다며 이제 다시 일할 수 있고 가족 생계도 책임 질 수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게 골목길에서 나오는데 그의 아내가 그곳에 있었다.

"자, 가방은 아내가 집으로 가져가면 되니깐, 이제 난 너를 타멜까지 가는 버스 탈 수 있는 곳까지 데려다줄게."

카라니는 그렇게 말하며 가방을 그의 아내에게 건냈다. 그리고 나를 데리고 버스를 탈 수 있는 거리로 갔다. 걸어서 가는 동안에도 난 뭔가 아내가 그 가방을 들고 다시 인도인의 집에 갈까봐 미심적어서 계속 뒤돌아봤는데, 그녀는 끝끝내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 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시야에서 우리가 사라지고 난 후, 나는 카라니에게 물었다.

"카라니 그냥 솔직하게 말해줘. 난 저 돈 어차피 너한테 그냥 주려고 했던 돈이거든. 너 정말 저 수선함이 필요했던거 맞아? 난 화난게 아니고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저 사람이랑 무슨관계야?"

그러자 카라니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런 관계도 아니야. 수선함 사는거 도와줘서 정말 고마워. 이제 다시 정말 열심히 일해서 가족들 생계를 책임질거야. 아이들을 걸고 맹세할게. 너 신발에도 문제 생기면 언제든지 날 찾아와. 나 어디에 사는지 알지? 너건 공짜로 해줄게!"

그 말을 마지막으로 우린 인사를 하고 난 버스를 타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그 날 밤은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며칠후, 호스텔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다시 Bouda Stupa에 방문하게 되어서, 그곳에 간 김에 난 친구들을 데리고 피난민 캠프를 찾아갔다. 친구들이 캠프의 모습을 보고 놀라고 있는 동안 난 카라니의 집을 찾아갔다. 하지만 그곳에 그의 가족들은 없었다. 집안을 들여다보았지만 구두 수선함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집 앞에 서성이고 있으니 이 캠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남성이 다가와서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어요?"

난 그에게 우리가 이곳에 온 목적을 알려주었다.

"여기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왔는데요."

"아~ 카라니요? 지금 가족들이랑 잠깐 어디 갔어요. 그냥 안에서 앉아서 기다리다보면 올거에요."

아무래도 이곳에 카라니가 가족들이랑 살고 있는 건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난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근데 카라니 무슨 일 하는지 알아요?"

"그 사람 구두 수선하는 일 하고 있어요."

그의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카라니를 만나서 다시 진실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친구들을 데리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그를 하염없이 기다릴 수 없으니 우린 그냥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과연 그날의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나의 머리는 99% 사기였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는 사기가 아니었을 1%의 가능성에 기대하고 있는 내가 있다. 아마 이게 바로 그들이 심리적으로 노린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의 동정심을 이용한 악질적인 사기다.

4천루피. 4만원.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을 수 있는 돈. 어쩌면 현지인들에겐 한달 생활비로도 부족함이 없을지도 모르는 금액. 그 돈의 일부라도 그의 아이들이 맛있는 걸 먹는데 쓰였었다면 좋겠다.


카라니의 가족이 살고 있던 지진 피난민 캠프

쓰레기 더미 속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사진 속 집은 원래부터 이곳에 있었던 집으로 추정된다. 대부분은 나무판자와 비닐로 만든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의 집으로 날 데려가는 카라니의 뒷모습.

여행을 다니다 보면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허락도 안 받고 사람들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을 많이 보는데, 개인적으로 난 그런 걸 반대하는 사람이다. 사진은 카라니의 아내와 그의 아이들. 전혀 찍을 생각이 없었는데 카라니가 사진 찍어도 된다며 오히려 찍어주길 바라는 듯이 말해서 찍었던 한장.

구두 수선함을 판다는 인도인이 있던 집이 있던 한적한 골목. 지금 생각해보면 참 겁도 없었다. 이건 집 안에 들어가기 전. 막상 구두 수선함의 사진은 찍을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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